날아오른 백자… 누워있는 금관… 찰칵, 숨결을 불어넣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자는 천장에, 금관은 바닥에 배치한 구본창 개인전 전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 ‘구본창 : 사물의 초상’ 展

해외 유출 백자 사진 매달고
묻히기 전 빛나던 금관 소환

佛 고건축물 장치 ‘샤스루’ 등
일상속 사물들로 호기심 자극

한강·故박완서 등 초상도 선봬
30일 첫 번째 ‘작가와의 대화’

광주 = 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언제쯤일까, 지금보다 앳된 한강 작가가 우산을 쓰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시선을 돌리니 이번엔 고 박완서 작가. 웃음기 없는, 조금은 일그러진 표정이 낯설고 흥미롭다. 지난 22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개막한 사진작가 구본창의 개인전. 두 작가뿐만 아니라 고 강수연·안성기·이정재 배우 등 유명인들을 ‘구본창의 시선’으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본창 작가가 모로코의 한 상점에 걸려있던 빛바랜 커튼을 구매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언제, 어디서, 왜, 이들과 마주했을까. 그렇게 ‘얼굴들’만 봐도 충만해지는데, 사실 인물초상작품은 ‘구본창: 사물의 초상’이라 명명한 이 전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전시는 비무장지대, 조선백자, 신라 금관과 같은 작가의 대표 연작을 감각적으로 배치해, 작품이 공간을 통해 재해석되는 과정에 동참하게 한다. 작가의 소장품을 촬영한 ‘컬렉션’ 속 피사체를 진열한 것도 특이점. 구 작가의 ‘예술 언어’에 한층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최초 공개하는 영상 ‘코리아 판타지’(2017)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사물을 둘러싼 작가의 ‘선택’과 ‘시선’을 좇다 보면, 어느새 “한국성과 아시아적 정서에 주목했다”는 다소 어려운 기획 의도에도 어렴풋이 가 닿는다. 현대 예술의 자장 안에서 사진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 포스터에 쓰인 유리컵 사진의 실물.

“전시관의 넓고 높은 구조를 보니, 도전할 수밖에 없었어요.” 구 작가는 전시 개막 전 열린 언론 프리뷰에서 지난 3월 막을 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다시 전시를 열게 된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그의 말은 전시 1부 ‘역사를 품은 사물에 숨결을 입히다’에서부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해외로 유출된 백자를 촬영한 작품들로 구성된 ‘백자 연작’의 전시 형태를 보자. 이는 세로로 긴 천에 담겨, 10m 높이의 ACC 천장에 걸렸다. 미세하게 하늘거리며, 마치 백자의 영혼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처연하고 숭고한 순간. 또, 신라 금관을 촬영한 ‘황금 연작’은 대형 라이트 박스(187×148×59㎝)에 프린트돼 전시장 바닥에 고고하게 누워있다. 땅에 묻히기 전 찬란하게 빛났을 금관들을 소환한 전시 방식이 돋보인다. 2017년 제작됐으나 이제야 공개되는 영상 ‘코리아 판타지’는 국내 4대 고궁의 단청을 재해석한 것. 대형 스크린 안에서 단청의 강렬한 패턴과 빛이 리듬감 있게 반복된다. 빠르게 형태와 색깔을 바꿔 만화경을 보는 듯한 영상에 대해 작가는 “한국적 특성인 다이내믹과 해학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5세기 프랑스 고건축물 장치 중 하나인 샤스루.

비교적 근작인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 전시는 빈틈없이 꽉 찬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그동안의 구 작가가 선보였던 전시와 또 다른 점들을 2부 ‘일상 속 사소한 사물을 발견하다’에서 한껏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선, 전시 포스터로 쓰인 작품의 피사체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전시 포스터를 봤다면 누구나 궁금해 했을 법한 유리컵을 채운 빨간 색의 정체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진열된 사물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촬영해 ‘구본창의 시선’과 겨뤄 보는 건 어떨까. 굉장한 기회 아닌가. 주로 구 작가의 소장품을 촬영한 ‘컬렉션’ 시리즈를 선보이는 이번 섹션에서는 15세기부터 프랑스 고건축물의 장치인 ‘샤스루’, 매일 작가가 직접 커피를 내리고 모은 드리퍼, 일본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탄 자국이 선명한 다리미판, 시간을 품은 비누 등 흔하지만 특별한 일상의 사물들이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여 년 전의 한강 작가.

3부 ‘구본창의 시선과 마주하다’는 한강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초상과 함께 ‘구본창 월드’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를 모았다. 구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미니 다큐 영상은 전시의 길잡이가 돼 준다. 또한, 예술인들을 많이 찍어 온 구 작가는 이번에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2003년 사진도 공개했다. 이는 각계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촬영한 것으로, 당시 구 작가는 한강 작가의 자택과 인근 놀이터에서 여러 장을 찍었다고 했다. 그는 “수줍지만 어딘지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아마 한강 작가에게서 우리 모두 느끼는 인상일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번에 선택한 사진에 대해서는 “서재 등에서 찍은 사진이 작가로서의 아우라를 풍기지만, 왠지 이번엔 보다 편안하고 평범해 보이는 모습을 고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작가와 이웃해 살던 고 박완서 작가의 초상도 눈길을 끈다. 구 작가는 촬영 시기를 박 작가 작고 4년 전인 2007년 무렵으로 기억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 구본창 작가의 영상 작품 ‘코리아 판타지’. 화려한 단청의 변주가 만화경을 보는 듯 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2. 구 작가가 직접 커피를 내린 후 모아 둔 드리퍼. 매번 다른 무늬가 생기는 것에 주목했다. 3. 한강 작가의 사진(2003)을 촬영하고 있는 관람객. 4. 천정에 걸린 조선 백자 사진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구 작가의 ‘선택’과 ‘시선’ 안팎에 자리한 더 많은 이야기들은 오는 30일 ACC 문화정보원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더 깊고 자세하게 들을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0일까지이며, 작가와의 대화는 이 기간 총 3회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