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 혐의’ 前현대전자 대표, 미국 도피 22년 만에 1심 징역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전경. 연합뉴스

SK하이닉스 전신 현대전자산업 대표…비자금 조성·계열사 부당지원 혐의
검찰 수사 시작되자 20여 년 간 해외체류하고 미국 국적까지 취득
세탁된 돈은 ‘정치권 비자금’ 의혹…재판부 "국민 경제에 큰 피해"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지시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계열사를 부당지원한 혐의를 받던 당시 현대전자 대표가 미국 도피 20여 년 만에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 이현경)는 배임 등 혐의를 받는 박모 전 현대전자산업 대표에게 최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박 전 대표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5월까지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2000년 3월 신용장·선하증권을 결제하는 것처럼 허위전표를 작성한 뒤 당좌수표는 현금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56억 원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조성한 비자금을 고 정 회장에게 전달하고 결제비용을 허위 회계 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 돈들은 고 정 회장의 지시로 정치권 로비자금 등에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 전 대표는 같은 달 계열사에 5억3000만 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도 받는다. 박 전 대표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02년 미국으로 출국해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출국 21년 만인 지난해 1월 귀국했다. 그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이후 수사를 거쳐 지난 7월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방만한 운영으로 국내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고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해 경제에 큰 피해를 입혔다"며 "본격적인 수사가 될 무렵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20년 이상 해외에 거주하면서 수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비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조직 체계상 고 정 회장의 직·간접적 지시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 씨가 기업어음을 지급보증하는 방식으로 363억9000만 원 상당의 계열사 부당지원을 한 혐의에 대해서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점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강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