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인사 문란은 타산지석[시평]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법무장관 후보 초고속 낙마
역대 정권마다 유사 사례 속출
코드 앞서 도덕성 여전히 중요

尹정부 후반기 팀 인선 진행 중
또 충성심 위주로 찾으면 낭패
전문성 앞세운 탕평책이 正道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살다 보니 미국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을 목격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이 벌써 사퇴했다. 11월 5일 대선 뒤 8일 만에 장관 지명을 받고, 다시 8일 만에 낙마한 것이다. 애초 트럼프가 충성심 깊은 게이츠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자신을 두 차례 기소한 데 대한 보복을 꾀하고 4건의 재판을 위한 대비책으로 알려졌다. 게이츠의 낙마는 미국 역사에서 3번째로 빠른 장관 후보 낙마 사례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에서도 대선 이후 조각(組閣) 단계에서 장관 지명자의 낙마는 정권마다 발생했다. 2000년 이후로 국한해서 보면, 첫 희생자는 2001년 1월에 노동부 장관 지명에서 사퇴한 린다 차베스다. 그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됐으나, 이웃 여성에 의해 불법 이민자를 10년 이상 가사도우미로 고용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노동부 장관 지명자가 불법 이민자를 저임금으로 장기간 고용한 일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한 달 뒤에 변호사 톰 대슐을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듬해 1월 8일 상원에서 인사청문회가 시작됐고, 30일 그의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로부터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2005년부터 세금 신고 없이 친구로부터 리무진과 운전기사를 제공 받았고, 컨설팅 비용 등에 대한 탈세 사실도 드러났다. 아무리 민주당의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실력자이자 오바마가 취약한 중앙 정계의 멘토였다 하더라도 낙마를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이렇게 신상 문제가 아닌 정책과 소신 때문에 장관 지명자가 물러난 경우도 없지 않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저드 그레그는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2009년 2월에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받았다. 그러나 그는 열흘 만에 대통령과 심각한 정책적 차이 때문에 소신을 지키겠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초당적으로 정부를 운영하려던 오바마의 계획은 수포로 변했다.

트럼프가 처음 백악관에 입성할 때 노동부 장관으로 패스트푸드 회사 경영자인 앤드루 퍼즈더를 지명했다. 그도 불법 체류자를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사실과 공사의 이익 충돌 가능성 등을 이유로 2개월 만에 낙마했다. 트럼프의 첫 임기 시작 두 달 만에 보훈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로니 잭슨 퇴역 장군도 결국 한 달 뒤에 낙마했다. 진통제 남용과 음주운전 전력 때문이었다.

4년 전 경험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트럼프는 이번엔 연방수사국(FBI)의 검증 절차까지 피한 채 장관 후보를 지명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이미 사퇴한 법무부 장관 후보 다음으로 성폭력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받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의 낙마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또, FBI 국장으로는 트럼프의 2020년 부정선거 주장 동조자인 캐시 파텔을 내정했고, 주(駐)프랑스 대사로는 트럼프의 사돈인 찰스 쿠슈너를 지명했다. 트럼프 인사의 화룡점정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고, 그의 참모인 보리스 엡스타인이 재무부 장관으로 추천하겠다며 한 인사에게 매월 5000만 원을 내라고 했다는 기상천외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고위직 인선을 하다 보면 인사청문회를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 인사청문회가 한국과 달리 정책청문회라고 한다. 그러나 정책청문회는 신상 문제가 사전에 철저히 검증돼 상원에서 논란이 불거질 일이 없는 경우에 이뤄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전 검증에서 걸러지지 않은 신상 문제로 미국에서도 낙마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사청문회와 관련, 미국처럼 정책청문회를 추진하기 위해 비공개 신상청문회와 정책청문회로 이원화하자는 주장은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트럼프 팀이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능력과 전문성보다는 충성심을 중심으로 인선하다 보니 미국에서도 구설이 끊이지 않고 낙마가 이어진다. 트럼프 측도 그렇듯이 장관 인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에 기초한 탕평책에 더해 더 철저한 신상에 대한 사전 검증이다. 우리나라도 곧 총리와 장관을 교체한다는 소식이 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장관 후보가 낙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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