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잣고개와 작고개’[이기봉의 우리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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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구성구 동백동은 대단위 신흥 아파트단지인 동백지구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동백이란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 지명 동막과 백현 두 마을을 합하고 ‘동’과 ‘백’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이 중 백현의 한자 栢峴은, 잣고개를 한자 栢(잣 백)과 峴(고개 현)의 뜻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잣고개는 동백동에서 처인구 포곡읍의 마성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자 그 아래 마을의 이름이기도 했다. 栢을 써서 잣나무와 관련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는 성(城)의 우리말인 ‘잣’을 가리킨다. 마을 동쪽의 선장산(349.6m) 정상을 둘러싼 고대 용구현의 통치성인 할미산성 아래를 지나기 때문에 잣고개라 불렀다.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에서 북구 석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도 잣고개이고, 그 아래의 마을 이름도 같다. 한자로는 尺(자 척)의 뜻과 曲(굽을 곡)의 소리를 빌려 尺曲이라 표기했지만, 길이를 재는 ‘자’나 ‘굽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여기서의 ‘잣’도 성(城)의 우리말이다. 통일신라시대 9주 중의 하나였던 무주 또는 무진주의 통치성인 무진도독성의 한가운데를 관통해 잣고개라 부른 것이다.

경기도 양주시청 서남쪽의 어둔동에는 호명산과 대모산 사이를 동남-서북 방향으로 넘나드는 작고개가 있다. ‘작’은 한자 鵲(까치 작)으로 까치와 관련된 설화가 있었을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는 성(城)의 우리말 ‘잣’을 약간 다르게 발음한 것이다. 고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독자적인 고을이었다가 양주에 완전히 흡수 통합된 견주(見州)의 통치성인 대모산성 밑을 지나가기 때문에 작고개, 즉 잣고개라 불렀던 것이다.

잣고개 또는 작고개란 이름은 전국적으로 흔하진 않아도 희귀하지도 않았다. 혹시라도 주변에 잣고개, 작고개란 이름이 있다면 근처에 거의 분명히 고대 산성이 있을 것이다. 한자로는 栢峴(백현), 城峴(성현), 尺峴(척현), 鵲峴(작현) 등 다양하게 표기했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