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은 헌정질서 흔들고 李는 국정 무력화… ‘민주주의 회복력’ 가물가물[Deep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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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의 Deep Read - 탄핵 정국에서 만난 민주주의

한국정치, 다원·참여·보호·성취·발전성 흔들… ‘이중적 신념체계’에 지배돼 말-행동 불일치
尹 정권만큼 이재명의 민주당도 위험… 정치적 참여 증가에 따른 제도 개혁·사회적 합의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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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혼란이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티머시 마틴 한국 지사장은 “지금은 한국 정치의 크레이지(crazy)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포브스지는 “이번 계엄령이 한국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그 회복력을 높이 평가하며 신뢰한다”고 밝혔다. 회복력이란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수준을 넘어, 위기 이전보다 더 전진하며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역동적인 의미를 갖는다. 어떤 평가가 맞을까.

◇민주주의 5요소

윌리엄 허드슨과 엘렌 그릭스비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 5개를 지적한다. 첫째 다원성. 이는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 과정에 참여하고 정치권력을 분산해 공유하는 것이다. 로버트 달에 따르면 다수란 수많은 소수로 구성되며, 이들이 지배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 특성을 보인다. 결과는 극단적 정치 양극화다.

둘째 참여성. 국민이 정치과정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1987년 체제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참여의 폭발적 증가 한편으로 극단적 팬덤 정치의 폐해도 커졌다.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팬덤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저해하며 공정한 정보에 기초한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민주적 절차를 우습게 안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참여 폭발의 위기’다.

셋째 보호성.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자유·평등·인권 등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인 가치가 이념과 진영의 논리에 따라 왜곡되고 부정되고 있다.

넷째 성취성. 국민은 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인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책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전례 없는 포퓰리즘이 확산 중이다. 문재인 정부 때 좌파 포퓰리즘이 극치를 이뤘고, 이재명 일극 체제의 민주당도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등으로 오마주하고 있다.

다섯째 발전성. 시민의 민주주의 가치와 태도에 대한 일관성과 내재화를 전제로 한다. 정치적 자유, 법의 지배, 대화와 타협, 상호 관용, 인권 존중 등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이를 지키기 위한 일관성 있는 행동 등이다. 한국의 상황은 말 따로 행동 따로이다.

◇제왕적 권력, 제왕적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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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태도가 약할 뿐 아니라 ‘이중적 신념체계’에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인데, 이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 개념이 분명해진다. 윤 대통령은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방법으로 헌정 질서를 짓밟으면서 계엄을 추진했다.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를 척결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지만 정작 윤 대통령 자신은 내란 혐의 피의자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몰렸다.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입만 열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지만 사실상 의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도록 규정한 ‘내란·김건희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삼권분립에 어긋나 위헌성이 농후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국회가 협의해달라며 국무회의에서 특검법안을 공포하지 않자 탄핵 추진을 선언했다. 권한남용이며 국헌 문란이다. 윤 대통령을 국헌문란 내란죄로 탄핵하고 고발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셈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 소추안 가결 이후 국정안정협의체를 제안하면서도 국무위원들을 줄줄이 탄핵(소추)함으로써 국정 마비를 꾀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말로는 국민을 대표하고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한다고 밝히지만, 실제로는 당론에 순종하고 국민 대신 제왕적 당 대표를 위한 방탄에 앞장서는 정치적 노예의 길을 걷고 있다. 총체적으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행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정치 현장이다.

◇회복력이라는 착시

현재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회복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착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5가지 요소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분명 위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 강화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양극화 △법의 지배 약화 △국가에 의한 시민운동 통합 등 요인으로 설명했다. 이런 진단과 분석의 근저에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취약해지고 변질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져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성숙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실제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허약하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1987년 체제’의 개혁, 개헌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하는 정치공학적 접근만으론 문제의 전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 핵심 요소들이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여건이 마련되는 방안이 포함돼야만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치적 참여의 증가에 맞춰 제도적 개혁과 사회적 합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벤저민 카터 헷은 저서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The Death of Democracy)’에서 민주주의 국가(바이마르공화국)에서 어떻게 최악의 독재정권(히틀러)이 탄생했을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나치는 선거라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집권 후 민주주의 가치는 짓밟혔고 히틀러의 권력은 거침없이 강화됐으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겉과 속 다른 민주주의

윤석열 정권은 시대착오적 계엄 발동으로 권력의 마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입법 폭주를 하는 민주당이 행정 권력까지 차지하는 건 괜찮을까. 가장 위험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 설명

‘윌리엄 허드슨’과 ‘엘렌 그릭스비’는 미국의 민주주의 연구가이자 정치학자. 허드슨은 ‘American Democracy in Peril(1995)’을, 그릭스비는 ‘Analyzing Politics(2002)’를 각각 펴냄.

‘벤저민 카터 헷’은 미국의 역사학자. 히틀러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한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펴냄. 분노와 오판에 의한 민주주의 붕괴 과정을 설명.

■ 세줄 요약

민주주의 5요소 : 계엄 및 탄핵 정국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복원력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제기돼. 민주주의 5요소는 다원성·참여성·보호성·성취성·발전성인데 지금 한국에서 이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

제왕적 권력, 제왕적 야당 : 윤석열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으로 헌정 질서 흔들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의회 폭주로 국정을 무력화시키는 상황.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행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정치 현장임.

회복력이라는 착시 : 한국은 지금 겉과 속이 다른 민주주의를 경험 중.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회복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아직은 ‘착시’. 가장 위험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