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에 희망 한 페이지… 새해엔 ‘독서할 결심’

■ 본보 문화부 기자 6인의 ‘올해 꼭 읽을 책 12선’

한 해를 건너온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닐지라도 왠지 모르게 새로운 마음을 먹게 된다. 누군가는 위로해주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고 또 누군가는 서로의 안녕을 빌어보고자 다짐한다. 문화부 기자들은 각자 두 권의 책을 손에 쥐었다. 독서할 결심.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희망과 구원, 위로를 책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 올해 읽을 책을 정하지 못한 독자라면 문화부 기자들의 독서계획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문학의 자리를 찾는 문학 기자, 30대를 맞은 기자, 늘 포기하던 대하소설을 읽겠다는 기자 등이 서로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그 마음과 마음이 포개질 때, 책이 이끄는 더 나은 내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로베르트 무질‘특성없는 남자’

현재 닮은 1차대전 직전
나의 분노는 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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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혼란으로 시작됐다. 갈등과 혼돈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야 하는 절박함이 누구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장밋빛 희망을 얘기하긴 싫다.

로베르트 무질의 장편 ‘특성 없는 남자’(문학동네)의 주인공 울리히는 속성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는 현대사회에 투항하길 소극적으로 거부하는 존재다. 놀라운 점은 소설의 배경인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전환기와 지금 현재가 닮았단 점이다. 책은 ‘수많은 타인이 개인의 일에 개입하고 개인보다 개인을 더 잘 아는 오늘날, 자신의 분노가 실제로 자신의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고고하지만, 소박한 마음을 읽어내 본다.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은 친부 살해란 자극적인 소재나 무신론자 이반의 ‘대심문관’ 이야기 등으로 인간의 심연을 드러낸 심오한 소설이란 오해 아닌 오해를 받지만, 사실 이 소설의 핵심 주제는 위로와 사랑이다.

알료샤는 정신적 지주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좌절감을 느끼고, 아버지와 형의 애인이었던 그루셴카를 찾아간다. 알료샤는 ‘타락한 악녀’란 평판의 그루셴카에게서 오히려 진실된 사랑을 갈구하는 상처받은 영혼을 발견한다. 알료샤는 자신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 그녀를 대하고, 그루셴카는 감격한다. 올해엔 위로받기보다 위로해주는 존재가 돼보면 어떨까. 일단 나부터.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알랭드 보통 ‘불안’

결핍·속물근성·불확실…
내 불안의 모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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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됐다. 앞자리가 바뀐 올해만큼은 조금 더 나아져야겠다는 마음이 된다. 그래서일까. 유독 나와 거리가 가까운 책에 눈길이 간다. 희망적인 이야기보다는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보며 결심하게 된다. 올해는 찬찬히 나를 돌아보고 나아가야지.

알랭드 보통의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로 이어지는 ‘사랑 3부작’을 열심히 읽으면서도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불안’(은행나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사랑보다는 불안에 관심이 간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안고 사는 불안에 대해 알랭드 보통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내 안의 불안도 이 안에 포함되는지 살펴봐야겠다.

출판 담당 기자로서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메리케이 윌머스의 ‘서평의 언어’(돌베개)를 골랐다. 매주 북리뷰 기사를 쓰면서도 주마다 서로 다른 어려움을 마주하는 나에게 영국 서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독보적인 여성 편집자인 저자가 쓴 책은 참고서가 된다. 40년 경력의 선배가 보여주는 지향점은 구체적이다. “절제되고 두드러지지 않는 참신함, 소설의 장점에 대한 정교하면서도 정황적인 설명, 그리고 이에 대한 그럴싸한(아니, ‘진실한’이라고 해야 하려나?) 감상.” 올해 내가 쓸 기사는 이 구절을 향해 있을 것이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브렉시트·우크라戰 추가
세계역사 만화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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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건 시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듣는 말이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봤다. ‘나는 어디서 역사를 배웠나?’ 위인전을 읽고, 뉴스 기사를 접하며 거기서 파생되는 궁금증을 검색으로 채워왔다. 하지만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흐름’을 잡고 역사와 민족, 국가를 가르치던 스승이 있었다. 이원복 작가의 ‘먼나라 이웃나라’(김영사)다.

1981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 시리즈는 40년 넘게 이어지며 24권까지 출간됐다. 나의 읽기는 20년 전 멈췄지만 이 작가는 개정 증보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5번째 옷을 갈아입었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이 추가됐다. 쇼트폼 시대에 맞춰 요약본도 넣었다. 그래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이 시점, 24권을 다시 읽을 결심을 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2014)도 다시 잡아보려 한다. ‘편집의 힘’을 강조했던 이 책은, 지금 보면 일종의 예언서 같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시대에는 기존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 의미를 부여하는 편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의 홍수 속 양질의 정보를 선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 바로 ‘지식 편집’이다”라는 김 교수의 주장은 출간 당시보다 지금 이 시점에 더 유효하다. 텍스트가 아닌 각 텍스트 간의 맥락을 중시하는 콘텍스트의 시대임을 웅변하는 ‘에디톨로지’는 출간 당시 보다 지금 더 큰 가르침을 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리베카 솔닛 ‘어둠 속의 희망’

슬픔과 절망의 시기에도
희망믿는 이를 위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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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창비)을 읽으며 서로의 안녕을 빌어보고자 한다. 책은 “희망은 모든 것이 과거에도 좋았고 현재에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고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각자의 신념을 갖고 집회에 나섰고, 각종 참사에 애도를 보낸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무안공항에서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공항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곳곳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 이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공항을 누비고 다녔다. 눈 밑이 발갛게 부은 사람들은 한사코 취재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입을 여는 유족들을 찾아내야 했다. 남편이 3년간 암 투병을 한 끝에 회복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돌아오지 못한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사연 취재를 해도 됐던 걸까, 고민이 들었다. 그러던 중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웨일북)가 눈에 들어왔다. “보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대규모 구경이 되어버릴 뿐”이라는 저자의 표현처럼 사연 취재는 결국 참사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뉴스는 결국 사람 이야기인 만큼 유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울림을 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런 관심과 울림은 사회적인 애도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책의 내용처럼 사연 취재가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다짐도 끓어오른다.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

박경리 ‘토지’

늘 포기했었던 대하소설
올해는 꼭 ‘완독’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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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먹어 본다. 올해는 박경리 (1926∼2008) 작가의 ‘토지’(다산책방)를 반드시 완독하겠다고. 2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다 읽겠다는 의지는 늘 호기롭게 피어났다가, 수치스럽게 지곤 했다. 시작이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되니, 이것은 20년도 더 된, 아주 오래 묵은 결심이다. 이번엔 다를까? 다를 것이다! 봉인된 열망이 풀린 이유가 어느 때보다 특별해서다. 지난해 10월 박경리의 고향 경남 통영에 다녀온 것이 계기다. 일본인 친구가 ‘토지 문학 기행’에 함께 참가하자고 했다. ‘가을 통영’에 이끌려 훅 따라나섰다. 토지 전 권을 다 읽었다는 일본 독자 30여 명과 3박 4일 일정을 함께했다. 문화부 기자라고 소개하니, ‘토지 팬’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1부 마지막에서 말이죠, 3부 그 장면은요…. 아, 이런 전 아직…. 기대에 부응할 기회가 또 생길까. 그때는 의기양양하게 대화에 참여해보고 싶다. 일단, 토지 완독 챌린지 모임부터 가입하고….

혼돈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연말을 보내고 힘겹게 맞이한 새해. ‘소설, 한국을 말하다’(은행나무)를 읽으며 발 디딘 ‘지금, 여기’를 돌아보려 한다.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문화일보에 연재된 짧은 소설을 엮은 단행본으로, 보도가 아닌 ‘이야기’로 한국 사회와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게 활동하는 작가 21명이 사교육, 반려동물, 새벽 배송, 돈, 번아웃 등 각자 선택한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안다고 생각한, 모르는 척했던 각양각색의 ‘한국’을 저마다의 필치로 그려냈다.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그때의 우리는 틀렸고, 지금의 우리는 맞을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김애란 ‘바깥은 여름’

살아남았단 ‘죄의식’ 넘어
처음인 것처럼 또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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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문학의 자리가 남아 있다면 평범하고 작은 사람들 옆일 것이다. 울고 있는 사람 곁을 지키고 앉아 함께 우는 곳이 콘텐츠의 홍수라는 말도 진부한 시대에 문학에게 맡겨진 자리다.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은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고 언어의 무너짐을 겪은 작가의 단편들이 묶였다. 그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럼에도 끝내 파괴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계속되는 삶은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의 밖으로 끝내 한 걸음씩 걸어나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이 소설집을 새해 첫 책으로 언제나 처음인 듯 다시 읽으려 한다. 그 후 최진영이 지난해 내놓은 소설집 ‘쓰게 될 것’(안온북스)을 읽어야겠다. 참사, 전쟁, 혐오와 폭력. 과거를 기억하는 모든 일은 미래를 사는 일이다. 반복되기에 그렇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체념은 아니다. 소설 속 말처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있다면 연결의 감각을 잊지 않는 일에 존재할 것이다. 계속 싸워 사랑하는 이와 세상을 지키자는 소설집을 꺼내 놓는다.

사람들은 살아 있다는 것이 행운이나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치지 않는 삶 속에 쓰고 읽으며 흘린 눈물만큼이라도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두 권의 책을 한강 작가의 말 위에 펼친다. 그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통해 이렇게 물었다. ‘세상은 왜 이렇게 폭력적이며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