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음악, 들리는 그림… ‘공감각의 향연’[북리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건반악기 하프시코드. 풍월당 제공

■ 음악과 이미지
박찬이 지음│풍월당

소리 들을때 색채 느끼는 저자
음악 연관이미지 400개 총망라

화가들의 캔버스 ‘하프시코드’
악보에 美 더한 ‘십자가 카논’
듣는 음악에 보는 재미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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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청각은 오랜 기간 조응해온 감각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는 악기들의 조화로운 연주 이전에 유려한 모양새의 악기들과 100명에 달하는 규모로 관객들을 압도하고 LP부터 시작해 CD, 현대에 디지털 음반까지 음악에는 앨범 아트가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 나아간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미지를 듣는 것이 가능할까. 청각과 시각이 서로 ‘공감각’하는 것은 자명하지만 공통된 감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이를 위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을 들을 때 색채를 함께 느끼는 ‘색청’이라는 복합 감각의 소유자인 저자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 오신 LP의 음악을 듣고 앨범 아트를 보면서 음악과 이미지가 서로 연동되는 경험을 했던 저자는 음악과 이미지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 끝에 “음악 없는 이미지, 이미지 없는 음악이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시각의 음악화’ 혹은 ‘음악의 시각화’를 위해 저자가 택한 방법은 단순하다. 음악과 관련된 400개에 달하는 이미지를 책에 전부 쏟아 넣었다.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림 작품이 나오니 미술책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이는 모두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하프시코드, 류트,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부터 시작해 바흐, 텔레만, 비버와 같은 음악가들의 모습, 그리고 심지어는 악기가 등장하는 회화 작품들까지.

저자가 모은 서로 다른 이미지 가운데 가장 직관적으로 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악기다. 바이올린은 그 특유의 곡선과 나무라는 재료만으로 우리에게 그 가녀린 음을 떠올리게 하고 피아노는 흑백으로 이뤄진 건반만으로도 명쾌한 피아노 소리를 연상시킨다. 그중에서도 14세기에 만들어져 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는 소리는 물론 그 아름다운 외형으로 유명한 시각과 청각이 한데 어우러진 고전 악기다. 하프시코드의 윗면을 장식하는 향판은 오랜 기간 화가들의 그림을 담아온 캔버스와 같은 역할을 한 만큼 하프시코드의 음악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감상의 묘미를 전한다. 이를테면 꽃 정물화는 향판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16세기 화가들은 식물도감이나 카탈로그를 참고해서 한 계절에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꽃들, 장미와 붓꽃, 카네이션, 튤립 등을 하나의 향판 위에 그렸다. 마치 다양한 음의 조화를 상징하듯 다채로운 계절의 꽃들은 당대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이보다 직관적인 악기의 모습은 현대인이라면 경악할지도 모른다. 그 주인공은 ‘고양이 클라비어’다. 대중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지만 17세기 무렵까지도 고양이의 꼬리에 키보드와 이어진 줄을 연결해 건반을 두드리면 고양이들이 울음소리를 내는 이 악기는 그 직관적인 형태와 작동 방식만으로도 우리에게 어떤 소리가 날지 예상케 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7세기 실제로 연주됐던 ‘고양이 클라비어’. 풍월당 제공

여기서 나아가 ‘보이는 음악’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은 바로 악보다. 연주하는 음표를 일정한 규칙 속에 적어내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각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악보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됐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영국 작곡가 토머스 몰리의 ‘십자가 카논’은 악보가 단순히 보이는 음악을 넘어 시각적 효과를 노렸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시다. 십자가 기보의 모범이자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소프라노와 알토에 해당하는 부분을 십자가 세로축에 배치하고 베이스 부분의 악보를 가로축으로 배치해 악보를 십자가 그 자체로 만들었다. 여기서 나아가 더 정교해지는 십자가 기보 속에서 천사와 사자, 황소, 독수리 등을 악보 속에 넣어 종교적인 의미를 강화하거나 십자가를 관통하는 시편 글귀를 넣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적인 악보를 만들어냈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상태라면 저자가 원하는 만큼 듣는 것은 역시나 무리다. 그러나 책에 담긴 기상천외한 악기와 악보들은 말 그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악기의 발전상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 귀에 들리는 음악의 역사를 떠올리게 되고 미술 작품 속 악기나 악보에 한 번 더 마음이 동한다. ‘색청’과 같은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이들에게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상상하고 악보를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음악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이 기분은 ‘공감각 할 여유’를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576쪽, 6만5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