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당 10억개 탄소원자가 정밀 타격… 장기 보호하며 암세포만 골라 없앤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이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 갠트리 치료실에서 치료 방법을 설명하면서 미소 짓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기

360도 도는 원통 속 에너지빔
설정 좌표대로 암종 찾아 사멸

전이땐 생존율 20% 골육종암
5년 생존율 52%로 효과 입증

올 하반기 두경부암까지 확대
난치암 환자들에 한줄기 희망

지난달 1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 지하 3층 ‘갠트리 치료실’. 우주선이 연상되는 이곳에선 중입자빔이 돌면서 암환자의 종양을 정밀하게 타격한다. 치료실 뒤편은 딴 세상이다. 길이 8m, 직경 6m, 무게는 200t에 달하는 거대한 갠트리 시스템이 있었다. 압도적인 규모의 갠트리가 360도로 회전하면 치료실에선 모든 각도로 중입자를 쏘게 된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은 이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 하반기 회전형 중입자치료기를 한 대 추가 운용해 치료 암종을 두경부암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세암병원은 회전형 1대, 고정형 1대를 운용 중이다. 그는 “하루 최대 50명 정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어 치료기 3대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최대한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중입자치료가 췌장암 등 난치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입자치료기는 기존 양성자치료에 사용하는 수소 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 입자가 이용된다. 중입자를 1초당 지구 5바퀴를 도는 빠르기(빛 속도의 70%)로 가속시켜 만든 에너지빔을 환자 암세포에 정밀하게 조사해 사멸시키는 원리다.

중입자치료기는 고정형, 회전형으로 나뉜다. 회전형은 환자가 안에 누우면 360도 회전하며 암세포를 타격한다. 회전형은 숨을 쉬는 장기를 쏴야 해 고정형보다 난도가 높다. 고정형은 전립선암, 회전형은 췌장암치료에 사용된다.

중입자치료에만 걸리는 시간은 1회당 2분 내외로 전체 치료(12회)는 한 달이 채 안 돼 모두 끝난다. 약 60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췌장암 환자는 오는 8월까지 대기가 밀려 있는 상황이다.

금 센터장은 “회전형은 고정형에 비해 치료시간도 2배 걸린다”며 “회전형 암종 대상인 췌장암은 위, 십이지장 등 보호해야 할 장기들이 인접해 있고 숨 쉴 때마다 암종이 움직여서 치료 난도가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췌장암은 치료 효과를 높이고 전립선암은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입자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부작용이 적다는 점이다. 무겁고 빠른 탄소원자가 체내 조사돼도 부작용 위험은 크지 않은 편이다. 초당 10억 개 탄소원자가 정상 조직은 지나치고 3D 엑스레이로 설정한 좌표에 따라 정확하게 암세포에서만 터지기 때문이다. 금 센터장은 “췌장암의 경우 방사선 치료에 비해 구역질, 복부팽만감 등 소화기계 증상이 확실히 적고 불편하다고 하는 환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폐암, 간암은 중입자치료가 빛을 발하는 암종들이다.

금 센터장은 “폐가 안 좋아서 마취 못 하고 수술 못 하는 환자들은 중입자치료를 통해 폐에 손상을 주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며 “간암 역시 남아있는 간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하는 환자에겐 중입자치료가 적합하다”고 했다.

중입자치료는 그간 치료법이 없었던 난치성 암에 유일한 치료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골육종암은 전이될 경우 5년 생존율이 20%에 불과해 대표적인 난치성 암으로 꼽힌다. 중입자치료를 받은 척추골육종암 환자 48명의 5년 국소제어율이 79%, 5년 생존율이 52%로 기존 치료를 통한 생존율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근육, 신경 등 연부조직에 발생한 골육종암 환자 61명의 3년 국소제어율과 생존율은 각각 84%, 88%에 달했다. 연세암병원은 골육종암으로도 중입자치료 적용 암종을 확대할 계획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이 무게 200t에 달하는 갠트리 시스템 앞에서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지난 3일 기준 연세암병원에서 전립선암 중입자치료를 완료한 환자는 총 424명이다. 이 병원이 지난 2023년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의료계에선 반신반의했다. 금 센터장은 “어려운 암환자 치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세브란스의 가치관”이라며 “1920년대 선교사들이 세브란스병원에 와서 방사선 치료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는데 세브란스 역사에 있어 가치 있는 도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금 센터장은 중입자치료기를 들여오기 위해 2017년부터 3년간 일본에서 전공의처럼 배웠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중입자치료를 도입했고 현재 7개 중입자치료센터를 보유 중이다.

금 센터장은 “일본 국립연구개발법인 양자과학기술연구개발기구(QST병원)에서 환자들을 보며 두경부, 폐, 간, 췌장 등 중입자치료할 수 있는 부위를 거의 한 달에 하나씩 공부해 1년 동안 배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한국 환자들이 일본에 와 중입자치료를 받는 것을 보고 의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그때 국내 환자들이 해외까지 고생하며 나올 필요 없도록 중입자치료센터를 잘 정착시켜야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고 덧붙였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