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포비아’ 공직사회 살얼음판… 일각은 야당에 ‘기웃’

세법·에너지 다룬 기재·산업부
‘尹사람 낙인 찍힐라’ 전전긍긍

거대야당의 ‘줄탄핵’ 여파로 국정에 공백이 생기면서 윤석열 정부의 핵심과제를 추진하던 경제부처들은 동력을 상실한 데 이어 고위급 실무자들 사이에선 ‘윤석열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면 순장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를 쪼개겠다고 공언하는 바람에 기재부 공무원들은 향후 거취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10일 관가 안팎에선 최고세율을 낮추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추진하던 기재부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발전산업의 생태계를 복원하려던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재부의 경우 관행대로 이달 중 실·국의 핵심업무를 맡을 총괄과장들의 인사를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이달 초 공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선 주요 인사의 발령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자칫하면 다음 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정년이 거의 다 돼서 공직생활에서 마지막으로 영전하고 싶은 경우가 아닌 이상 지금 시기에 요직에 앉고 싶은 공무원이 누가 있겠냐”며 말을 아꼈다. 이 대표가 권한 분산을 목적으로 대선 후보 시절 기재부를 정책과 예산 두 축으로 가르고 예산 편성 기능을 청와대에 두겠다고 밝힌 탓에 기재부 공무원들은 향후 커리어를 놓고 중차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대표가 문 정부에 이어 확장재정을 펼칠 공산이 큰 만큼, 예산실이 국정의 키를 쥘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 정부 출범과 함께 한직에 머물거나 문 정부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조직을 떠났던 인사들이 민주당에 줄을 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관가 안팎에서 무성하다.

산업부는 탈원전 정책에 관여했던 실무자들이 줄줄이 재판정에 섰던 아픈 역사가 있다. 최근엔 거대야당이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에 강하게 제동을 걸면서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언급해 온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탄소 배출 문제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이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환경부와 산업부의 관련 기능을 기후에너지부로 통합·신설해 대응하자는 게 기후에너지부 신설론의 골자다. 산업부 쪽에선 발전설비·전력망 확충 등이 시급한 에너지 분야에서 기후에너지부가 정책 주도권을 쥐게 되면 에너지가 규제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세원·박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