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블랙리스트 작성자, 피해자에 ‘탄원서’ 요구 논란

의대 동기·교수 등 통해 압박… 2차 가해 우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료계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의대생 등 ‘의료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해외 사이트에 여러 차례 게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직 전공의 류모 씨가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게 처벌불원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탄원서 작성을 거부하는 피해자를 상대로 ‘2차 가해’도 우려된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피해자 A 씨는 10일 “류 씨가 의대 동기, 전공의 동료, 교수 등 모든 지인을 동원해 수많은 피해자에게 탄원서를 부탁하고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류 씨의 지인을 통해 내게도 탄원서를 써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며 “친한 선배나 동료를 통해 탄원서 작성을 부탁해 피해자가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인 혐의도 밝히지 않은 채 지인을 통해 탄원서를 무차별적으로 받는 건 폐쇄적인 의료계 특성을 이용한 ‘형량 줄이기’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건이 정부가 의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강압수사라는 이상한 여론이 형성돼 탄원서를 써주는 분위기도 있는 듯하다”며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탄원서를 많이 모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우려된다. A 씨는 “탄원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의료계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이중 낙인까지 찍힐 수 있다”며 “류 씨 구속이 투사에 대한 억압이고 그를 돕는 게 투쟁 동지로서 마땅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류 씨를 투쟁 선봉에 선 ‘투사’로 보고 있어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메디스태프, 메디게이트 등 의료계 커뮤니티엔 탄원서 요청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이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류 씨 1심 첫 공판 기일은 오는 20일이다. 그는 스토킹 처벌법 위반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됐다. 그는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 등 2900여 명의 개인정보가 담긴 명단을 해외 사이트 ‘페이스트빈’에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민우·전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