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7일 환아 곁 지키는 의사’ 불려… “다음 생에도 소아백혈병 치료”[바이털 닥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본관 20층 혈액병원 무균폐쇄병동 내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이재욱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교수(소아혈액종양센터장)가 백혈병 환아들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 바이털 닥터 - 이재욱 서울성모병원 교수

“연약한 존재인 아이들 치료하는
가치있는 삶 위해 소아과 택해”

따뜻한 인술로 ‘실사판 슬의생’
보호자 “진심으로 대해줘 감동”

무균폐쇄병동 관리 등 국내최고
낮은 수가에 운영 난관은 여전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본관 20층 혈액병원 소아청소년병동. 무균폐쇄병동인 이곳에 들어서자 이재욱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교수(소아혈액종양센터장)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과묵하던 이 교수는 백혈병 환아와 보호자들에겐 무언가를 세심하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뛰어와 이 교수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장난기 어린 말을 건넸다. 이 교수는 이곳에 출퇴근할 때 가장 먼저, 주말에는 시시때때로 들른다. 아이들 상태가 불안정한 때가 많아서다.

환아 부모들은 이 교수를 ‘주7일 내내 환자 곁에 머무는 의사’라고 평한다. 이 교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실사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 환아 부모는 SNS에 “말씀은 없는데 행동으로 보여주는, 생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늘 감동이었다”라고 썼다.

소아혈액종양 질환의 권위자인 이 교수는 소아과를 택한 이유에 대해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는 누군가를 도우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택했다. 이 교수가 맡고 있는 분야는 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신경모세포종 등이다. 소아과 분과 중에서 소아혈액종양 질환을 선택한 건 환아에게 ‘뚜렷하게’ 도움이 돼서다. 이 교수는 “다른 질환과 달리 소아 혈액암은 치료 성적과 예후가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며 “잘 치료가 되면 아이에게 뚜렷하게 도움되는 것 같고 일할 때도 보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혈액암인 백혈병은 소아들에게 가장 많이 생기는 암 중 하나다. 국내에 연간 300∼400명가량 나온다. 10명 중 7명은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이다. 나머지는 급성골수성백혈병(AML)이다. 백혈병은 유전자 변이 등으로 백혈구 전 단계 세포가 암세포 성격을 가져 과다 증식해 발생한다. 원인은 명확지 않다. 완치율은 평균 80%대로 높은 편이다. 1차 치료로 ‘관해(골수 내 암세포 5% 미만)’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일부 환자들에겐 재발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최근 부작용을 줄인 신약이 계속 나오고 있어 재발한 경우에도 생존율이 많이 높아지고 있다”며 “치료 과정이 힘들 순 있지만 용기를 내서 치료를 받는다면 일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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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아 부모들은 이 병원 소아혈액종양센터를 무균폐쇄병동 관리, 부작용 대응, 의료진 전문성, 완치율 측면에서 ‘국내 최고’라고 꼽는다. 이 교수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간호팀, 전문간호사, 병동간호사들이 원팀이 돼 최적의 치료를 하기 위해 온 마음을 쏟는다”며 “1+1이 3이 되도록 늘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긴 치료 기간 동안 환자, 보호자, 의료진이 합심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재발과 후유증을 미리 걱정하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고 싶다”며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기에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환자와 함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소아혈액종양 분야는 러닝커브(학습구간)가 긴 편이다. 전문의를 따고도 3∼4년은 더 배워야 한다.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선 평생 배워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교수에겐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어 매력적인 분야였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소아’란 단어가 붙으면 절멸 위기에 처한다. 이 교수가 처한 현실도 녹록지 않다. 후학은 5∼6년마다 1명꼴로 들어온다. 난치병을 치료하는 분야지만 수가는 여전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곁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치료 과정에서 환아를 잃게 되면 상실감 때문에 매일매일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며 “떠나보낸 아이들 때문에 남은 아이들을 더 잘 치료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완치율 100%가 나오지 않다 보니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흔들림 없이 치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치료하다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환자 곁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위급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에게 모든 소아암 환자는 ‘각별한 존재’다. 환자들에겐 ‘노력하는 자세가 변하지 않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 내내 말을 아꼈던 이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 앞에선 말수가 많아졌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은 최선의 진료를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눈높이에서 잘 설명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쉽진 않지만 항상 환아와 부모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고된 의사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의사를 할 겁니다. 다음 생에 의사를 한다면 그때도 소아 백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될 거예요. 아이들 때문에 다시 선택할 겁니다.”

권도경·유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