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쇼맨십’에 동원된 금융기관장들…“본업인 입법은 나몰라라” 정치권 비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일 이재명(왼쪽 세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야당 의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시중은행장들과 현장간담회를 가진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시중은행장 소집, ‘맹탕 간담회’ 개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한은 찾아가 "추경 왜 찬성하나" 따져
정치권 정쟁에 ‘사진 찍기용’으로 동원된 금융기관장들 ‘탄식’

정치권의 혼란으로 금융시장에 위기감이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금융기관장들이 여야 정치인들의 ‘사진찍기용 쇼맨십’에 동원되고 있다는 비판이 금융권에서 일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금융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중앙은행 총재와 시중은행장 등 금융기관장들을 불러 각종 간담회를 갖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 있는 정책이나 금융대책들은 내놓지 못하고 그저 ‘사진 한 장’ 찍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금융시장이 큰 혼란을 겪으며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여야 정치인들이 줄줄이 금융기관들을 찾아다니고 있

다. 포문을 연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이 대표는 비상계엄 사태 발발 이후인 지난해 12월 8월 국회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간부들을 불러 외환시장 점검 간담회를 가졌다. 야당 대표가 경제 당국자와 중앙은행 간부들을 부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 일이다. 당시 급등했던 환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는 명분이 달렸지만, 그 이후 민주당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이나 방안을 내놓은 것은 없다. 이튿날인 9일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등 야 3당 의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를 찾아갔다. 비상계엄 사태로 흔들리는 자본시장을 점검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이 야당의 설명이었지만, "잘해라"라는 격려성 얘기 외에 건설적인 얘기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19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서울 중구 한국은행을 직접 방문했다. 국회의장으로서는 사상 첫 중앙은행 직접 방문이었다. 우 의장은 이창용 한은 총재를 만나 정치적 불확실성 최소화와 금융시장의 조속한 안정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역시 방문 사진 외에 눈에 띄는 발표는 없었다.

이달 들어 지난 20일 있었던 이재명 대표와 은행장들 현장간담회는 ‘쇼맨십’의 극치라는 반응이 금융권에서 나왔다. 야당 대표가 5개 시중은행장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등 은행권 CEO들을 죄다 불러 모은 것이다. 은행장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현직 대통령도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금융시장에 개입한다는 불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소집할 때마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이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행장들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많은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열린 간담회였지만, 역시 별다른 금융시장과 관련한 대책이나 방안은 발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대표는 모임의 논란을 의식한 듯 "은행권에 무언가를 얻어보거나 강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굳이 은행장들을 한 곳에 불러 모으지 않아도 금융업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요즘처럼 민감한 시기에 그저 애로사항을 청취하기 위해 은행장들을 불러 모았다고 하면 이를 그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권성동(앞줄 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여당 의원들이 22일 한국은행을 방문해 이창용(〃 왼쪽) 한은 총재와 함께 건물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도 마찬가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지난 22일 한국은행을 방문해 이창용 총재와 면담을 갖고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명목은 금융·외환 시장 상황에 대한 논의였지만, 역시 여당도 이렇다 할 안정대책이나 활성화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관련해 야당과 같이 추경이 필요하다고 밝힌 이 총재에 ‘항의’하기 위해 찾아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권 대표는 "(추경 필요 발언) 배경이 뭔지 이런 부분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방문했다"며 방문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중앙은행이 재정의 조기 집행을 주장하는 여당과 엇박자를 내며 야당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가 뭔지 따져 묻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여야 정치권이 국회에 계류된 각종 금융·경제 법안 통과에는 손 놓고 있으면서 금융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사진만 찍고 다닌다는 비판이 금융권에서 자자하다"며 "금융기관들 불러모을 시간에 여야가 만나 민생·경제 법안이나 금융시장 안정대책 마련에 힘을 쏟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칭찬받는 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