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글로벌 공급망… ‘독점 운송’ 구조부터 바꿔라[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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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망 붕괴의 시대
피터 S 굿맨 지음│장용원 옮김│세종서적

‘최소비용 최대이익’ 좇던 中
소수기업이 해운일정 독차지
팬데믹 위기 관리 완전 실패
‘저임금 고강도’ 노동도 원인

亞·유럽 특파원 출신 저자
컨테이너 운반과정 등 추적
기업 생산구조 개선 제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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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삶에서 새벽 배송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뉴욕타임스 경제 전문기자이자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 시리즈 보도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던 저자는 새벽 배송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화는 이미 종말을 맞았고 단 하루 만에 물건이 바다를 건너오는, 이전과 같은 방식의 공급망 유지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느 때보다 배달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팬데믹 록다운(이동제한조치)’ 당시의 경험은 공급망 붕괴 시나리오의 예고편이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의심 또한 팬데믹 시기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됐다. 저자의 아내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던 2020년 초 자녀를 출산했고 의료시설이 아닌 집에서 산후조리를 감당해야 했다. 호기롭게 다졌던 그들의 의지는 울어대는 갓난아기의 기저귀조차 제대로 갈아줄 수 없다는 사실에 처참히 무너졌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에서 생필품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다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닌가.

아시아·유럽 등지에서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생필품 원자재부터 자동차, 컴퓨터 등의 생산에 필요한 수만 개의 부품까지. ‘세계의 공장’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 장난감 회사의 컨테이너 이동 궤적을 따라가며 공급망 붕괴의 원인을 추적해 나간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운송의 ‘독점’이다. 즉각적 수요에 맞춰 물건을 생산해내는 ‘Just In Time(JIT)’은 중국에서 생산한 물건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세계화 공급망의 핵심이다. 따라서 재고가 쌓이지 않도록 완벽한 계획에 따라 화물선이 움직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해운 일정 조정을 독점하고 있던 소수 기업들이 팬데믹으로 노동자들이 격리되자 위기 관리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한다. 간신히 부두에 닿은 화물이 도시 소비자들에게 쉽게 전달되지 못했던 문제의 원인도 ‘독점’으로 설명된다. 수십 년 동안 비교적 운송 규모가 작아 공급 조절이 편리했던 화물차가 육로 운송을 독점하고 철도 운송이 낙후돼 온 결과가 팬데믹 시기의 유례없던 공급 지연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같은 물류의 요지에 작은 문제 하나만 발생해도 오늘날의 공급망은 완전히 망가진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이토록 위태롭게, 간신히 유지되는 공급망은 과연 누구를 위해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졌는가. 저자는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적극적으로 포섭하며 세계의 공급기지로 만든 후 미국인들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또한 이를 발판 삼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 기업들은 더 많은 로비를 하며 독과점 규제 법안을 무력화하고, 더 많은 배당을 주주들에게 약속했다고 지적한다. 최저 가격 보장으로 홍보된 세계화의 진실이 철저히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계획돼 있었다는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의 공급망이 언제라도 망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도 제시한다. 장난감이 실린 컨테이너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해 컨테이너에 물건을 옮겨 싣고 화물선을 움직이는 사람들, 화물차부터 작은 미니밴까지 바퀴를 굴려 각 가정 앞에 물건을 배달하는 과정의 모든 노동자가 초저임금을 받으며 고강도 반복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참혹한 사실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생산부터 운송까지, 필요한 노동이 멈춘다면 언제든 몇 번이라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현대자동차의 조지아주 신공장 설립 사례 등을 언급하며 기업들이 세계화의 종말을 인지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다. 멕시코 등으로 생산 공장을 옮기는 니어쇼어링도 하나의 대책이다. 심화하는 미-중 갈등, 트럼프·바이든 정부의 자국우선주의가 이와 같은 변주를 만들어냈지만 저자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펼쳐질 트럼프 2기의 자국우선주의 앞에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저자의 주장 끝에 놓이는 단어는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다. 최저 비용-최고 효율의 ‘공급망’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완전히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세계화가 주주의 이익을 말하지 않은 채 진행됐듯 새로운 대안과 변화도 주주의 손해를 직설하며 시도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기후 정의’와 같은 것을 주목할 만한 예시로 든다. 가까운 곳에서 정당한 노동을 거쳐 생산된 제품이 탄소를 덜 배출한다는 논리인데 이는 곧 중국에 의존하지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지도 않는 새로운 방식의 생산과 공급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소비자, 기업 모두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한 시대가 왔다. 536쪽, 2만4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