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수혜’ 중국 90년대생… ‘딥시크 쇼크’도 이들의 작품 [Who, What, Why]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Who - 중국 ‘주링허우(九零後)’ 세대

30세 뤄푸리, 딥시크 개발 주역
35세 왕싱싱, 가성비 로봇 주목
테크업계 90년대생 천재들 즐비

유년부터 디지털 기술에 친숙
고등교육 확대로 학력도 높아
IT업계 인력의 30~50% 차지

베이징 = 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중국에서 1990∼1999년 사이 태어난 1990년대 출생자를 가리키는 ‘주링허우(九零後)’ 세대가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가성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테슬라에 도전장을 내 주목받고 있는 로봇업체 ‘유니트리’의 왕싱싱(王興興·35) 창업자, ‘즈위안 로봇’의 펑즈후이(彭志輝·32) 창업자, 전 세계를 강타한 ‘딥시크(DeepSeek)’의 개발자 뤄푸리(羅福莉·30), 또 다른 AI 기업 ‘문샷AI’의 양즈린(楊植麟·32) 창업자 등이 그들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이면서 학창시절 경제 성장과 개혁·개방의 수혜를 고스란히 입은 그들이 20대 중반∼30대에 들어 하나씩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AI, 휴머노이드 로봇…첨단기술 주름잡는 주링허우 = 최근 중국 경제 매체 커촹반(科創板)일보는 중국 내 AI 무대에 ‘90년대생 천재’들이 가득하다고 전했다. 시작은 최근 다른 글로벌 기업들의 10분의 1 비용으로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지닌 AI 모델 ‘R1’을 내놓은 딥시크의 뤄푸리다. 2022년 딥시크에 합류한 그는 R1 개발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베이징(北京)대 컴퓨터언어학 석사 과정 당시 8편의 논문을 유명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며 주목받았고, 지난해엔 레이쥔(雷軍) 샤오미 창업자가 1000만 위안(약 20억 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입사를 제안했다는 사실로도 알려져 있다.

딥시크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AI 업계에서 유명했던 ‘문샷AI’의 창업자 양즈린도 1990년대생이다. 양즈린은 중국 칭화(淸華)대 컴퓨터학과를 졸업, 자연어처리 분야 세계 1위인 미국 카네기멜런대 언어기술연구소(LTI)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3년 문샷AI를 설립했다. 문샷AI가 최근 발표한 AI 모델 ‘키미 K1.5’는 오픈AI가 작년 9월 공개한 추론형 모델 ‘o1’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물리적 AI 시대를 열 로봇 업계에서도 주링허우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최근 춘제(春節·음력설) 갈라쇼에서 군무를 선보여 화제가 된 휴머노이드 로봇 ‘H1’ 개발사인 유니트리의 창업자 왕싱싱도 1990년에 태어난 주링허우다. 저장(浙江)과학기술대에서 전기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상하이(上海)대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로봇 개를 시작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모델을 연이어 내놓으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유니트리는 로봇 개 분야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특히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격은 테슬라 옵티머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가격으로 주목받고 있다.

즈위안 로봇의 펑즈후이도 1990년대생이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전자과학기술대를 나온 그는 졸업 후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의 인재 확보 사업 ‘천재 소년’ 프로젝트에 발탁됐다. 입사 2년 만에 화웨이를 관둔 그는 2022년 12월 ‘즈위안 로봇’을 창업했다. 즈위안 로봇의 대표 휴머노이드 로봇 모델 ‘위안정 A2’는 문자·음성·영상 정보를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람과의 원활한 소통뿐 아니라 지식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정보 전달도 가능하다. 테슬라 옵티머스와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AI의 도입이 가져다주는 광활한 기회는 ‘90년대생 천재’들이 재능과 노력을 발휘하도록 끌어들이고 있다고 커촹반일보는 전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 경제 성장, 사회 개방 수혜 입은 세대 =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1990년대에 태어난 주링허우는 비약적으로 성장한 중국 경제와 사회 개방의 수혜를 입은 세대다. 1990년대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약 10%였다.

주링허우가 초등학생이던 1996∼2005년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본격화된 시기다. 1997년 홍콩 반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으로 중국 경제는 세계 시장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됐고, 이 시기 초등학교를 다닌 주링허우는 경제 성장의 혜택을 직접 체감했다. 교육 환경이 개선되고 학교 시설이 현대화됐으며 가정에서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컴퓨터, 휴대전화 등 디지털 제품 역시 이때부터 보편화하기 시작해, 주링허우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술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이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2002∼2011년은 경제 성장의 정점을 달리던 시점이다. 특히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은 중국의 WTO 가입과 함께 중국의 경제 성장과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1인당 GDP가 크게 증가했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소비 시장이 더욱 활성화됐다. 주링허우의 대학 및 사회 진출 시기인 2010년대 이후엔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서비스업과 첨단 기술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에 현재 중국 IT업계에서 1990년대생의 비율은 약 30∼50%로 추정되며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주링허우 비율이 70%를 넘는 경우도 다수인 것으로 나타난다. 알리바바 내 1990년대생 비율은 약 35∼45%, 바이두 내 1990년대생 비율은 약 30∼40%로 추정된다.

주링허우는 중국의 고등교육 확대 정책으로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이후의 세대로, 높은 학력도 보유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 등 자료를 참고하면 2023년 기준 주링허우의 대학 진학률은 약 50∼60%다. 중국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학 정원을 확대하고 고등교육 기회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 진학률이 크게 늘었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중국의 국력이 급격히 상승한 시대에 성장한 이들은 국가의 발전과 진보를 목격한 만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1990년대 초반부터 강화된 애국 교육의 영향이기도 하다. 살면서 큰 역사적·정치적·경제적 동요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로, ‘온실 속의 화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도전 의식과 창의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