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신경망·단백질 개발… 노벨 물리·화학상도 인공지능이 휩쓸어[Leadership]

■ Leadership

존 홉필드·데이비드 베이커 등
AI 활용 자연 과학 연구 성과

지난해 노벨상 수상은 인공지능(AI) 개발 분야의 대가들이 대거 수상하면서 AI가 과학계의 주요한 현안이 됐음을 보여줬다. 특히 이들이 AI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거나 적극 활용한 공로로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해 현대 과학이 AI와 기존 학문 간 융합이라는 변곡점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홉필드 미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였다. 이들은 AI 핵심인 머신러닝의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수상했다. 특히 두 사람은 AI의 겨울로 불렸던 1970~2000년 암흑기에서 벗어나고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꽃을 피우는 데 기여한 공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통 물리학자가 아닌 두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을 두고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이 만든 딥러닝과 인공신경망 기술이 물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벨위원회는 “인공신경망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데이터를 표현해내는 머신러닝을 창안한 두 과학자의 연구는 우리에게 이미 큰 혜택을 주고 있다”며 “입자물리학, 재료과학, 천체물리학 등 다양한 물리학 분야에서 신소재를 비롯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데 인공신경망이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컴퓨터 과학자로 분류되는 힌턴 교수는 물리학 이론을 활용한 AI 연구로 현시점의 챗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AI시대’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힌턴 교수는 수상 직후 “AI는 산업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위험도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벨 화학상도 같은 맥락으로 수상자가 결정됐다. 단백질의 세부 구조와 생명체의 유전적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분석하는 AI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와 존 점퍼 연구원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알파폴드를 통해 단백질 연구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들은 지난 2020년 알파폴드2를 발표해 약 2억 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허사비스 CEO는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신약 개발에는 평균 5~10년이 걸리지만 AI를 활용하면 이를 10배 이상 가속화할 수 있다”며 “올해 말 첫 신약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AI가 설계한 신약의 임상시험은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산하 100% 자회사인 신약 개발 스타트업 아이소모픽 랩스가 진행할 예정이다.

또 세상에 없던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AI를 개발한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베이커 교수는 컴퓨터를 이용한 단백질 설계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해온 공로로 수상했다. 그의 연구는 로제타(Rosetta) 소프트웨어 개발로 시작됐고 자연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는 데 사용됐다. 알파폴드의 가파른 진화 배경에는 베이커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강력한 라이벌 로제타폴드가 있다. 로제타폴드는 2021년 사이언스의 ‘최고의 연구 성과’로 선정된 바 있다. 이들의 성과는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특히 생화학, 생물학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단백질의 아미노산부터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단백질 기능과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고,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단백질의 설계는 백신, 단백질 기반 억제제 연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AI 연구자들이 잇따라 수상한 것은 파격적인 일로 평가받았다.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이라는 고전적인 자연과학의 삼두정치에 느슨하게 배정돼 있던 노벨상에 변화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AFP통신은 “AI는 오랜 기간 과학의 변방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금도 지원받지 못했지만 두 개의 노벨상 수상은 마침내 햇빛을 받을 때가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AI가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 노벨상위원회가 AI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혜 기자 ljh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