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너머 내면 모습까지… 초상화에 담긴 조선 사람들의 철학[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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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반할 초상
이성훈 지음│태학사

오늘날 얼굴을 기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마트폰 속 사진 앱을 열어 촬영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몇 초도 안 걸린다. 그럼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수고롭지만 손으로 직접 그렸다. ‘초상화’다. 그러나 여기엔 ‘얼굴을 담은 그림’ 그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대상으로 당시 사람들이 왜 초상화를 그렸는지, 어디에 사용했는지, 기법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을 살펴보며 초상화 이면의 메시지에 접근한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라고 했을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이다.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은 초상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맥이 끊겼던 ‘어진 시대’를 연 임금이기 때문이다. 숙종 이전에는 그림을 하찮은 기예로 치부하는 부정적 인식이 만연했다. 또, 왜란과 호란 등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진을 그리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많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숙종은 세 차례에 걸쳐 어진을 만든 데다 선원전, 장녕전 등 진전에 봉안했다. ‘핍진’(실물과 매우 비슷함)하게 그리기 위해 임시 부서를 설치하고 화가도 직접 선발했다. 조세걸 등 걸출한 화가가 참여했다.

당시 핍진함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실물과 닮게 그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실제에 가까운 그림이 곧 개인의 내면을 담을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세걸의 제자 김진여가 1719년 그린 ‘권상하 초상’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서양 화법을 적극 수용했는데, 윤곽선 없이 채색만으로 콧대를 묘사하고 입 주변을 밝게 칠해 입체감을 드러냈다.

초상화는 개인의 의사를 깊숙이 반영한 그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옆에서 하나하나 살피고 참견했다. ‘강세황 자화상’은 주인공의 내면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표적 작품이다.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옥색 도포를 입었다. 오사모는 관리가 관복과 함께 착용하는 관모, 도포는 야복(野服·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 입는 옷)의 하나다. 결국 오사모와 도포 차림은 격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여기에는 강세황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이 그림에서 오사모는 ‘출사’를, 야복은 ‘은일’을 상징하는데, 강세황이 출사와 은일이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고뇌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초상화를 통해 시대와 사회는 물론 당대 사람들의 이상과 염원까지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456쪽, 2만4000원.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