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앞두고 의·정 갈등 더 꼬이게 한 교육부 장관 실언[사설]

새 학기 개강을 며칠 앞두고 나온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0’ 발상은 개탄스럽다. 의과대학 신입생 및 휴학생의 수업 정상화를 위한 고육책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은 이해한다. 그러나 사회부총리까지 겸임하는 국무위원으로서 지난 1년 간 정부가 힘겹게 추진해온 의대 증원 노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도 비치는, 무책임한 행태다. 총리실과 보건복지부 등 관계 기관과의 조율도 없었다고 한다.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속에서도 비틀비틀 나아가는 의료개혁을 더 꼬이게 할 수도 있다.

이 장관은 최근 의대 학장들과의 간담회에서 학생 복귀를 설득하면 증원 이전 정원인 3058명 안이 실현되도록 힘을 싣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쪽에도 증원 0명 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정부도 내년 정원을 제로 베이스에서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고, 한때 각 대학에 증원 인원에 대해 100% 자율권을 주는 것을 검토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의 순서가 중요하다. 다른 개혁 의제 협의와 연동되면서 ‘도로 3058명’이 되는 것과, 미리 그런 안을 제안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의료 단체들은 증원 0명을 전제로 새로운 요구를 내놓고 있다.

협의 과정을 건너뛰고 정부 당국자가 증원 제로를 제안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자기부정이고, 의료개혁 실패도 자인하는 격이다. 불편을 감내하며 의료개혁을 지지한 국민의 수고를 무위로 만들어 버린다.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 논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국정 표류의 단면이어서 더욱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