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통화조차 못한 한국… 구심점 없어 정부도 민간도 ‘각자도생’[관세전쟁, 위기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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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전쟁, 위기의 한국 - (3)국가 리더십 공백

대통령·국무총리 기능 마비
崔대행으론 영향력 한계인데
巨野, 정부 발목잡기만 급급
사실상 외교정책 동력 상실

“어떤 전략 세울지 알 수 없어”
컨트롤타워 부재로 대응 난항

“정부와 민간이 양쪽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공략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지금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어떠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외교적 아노미’ 상태처럼 느껴진다.”

최근 방미를 준비했던 한 경제계 인사는 5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탄핵 정국 속 정부의 전략적 대응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만 하더라도 대통령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전 부처가 유기적으로 외교·통상 전략을 꾸려왔지만 올해 1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뒤로는 정부와 민간이 모두 ‘각자도생’ 분위기라는 것이다.

실제 탄핵 정국 이후 한·미 간 정상 외교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정상 간 통화는 44일째 불발됐다. 최 권한대행이 트럼프 최고위급 인사와 접촉한 것은 지난달 28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화상 면담을 진행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마저도 장관급과 면담한 것이어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닌 기재부 장관 자격으로 통화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최 권한대행은 최근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의 외교 한계를 의식한 듯 참모진들에게 “통화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상대국 입장에선 정권이 두세 달 후에 바뀔 수도 있는 만큼, 협상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정치 혼란이 없었다면 선제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끌어올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고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송재우 기자

외교·통상 정책을 총괄해오던 대통령실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전략적 대응이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관가 내부에서 나온다. 현재 통상 이슈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모든 부처를 총괄하고 있고, 외교 관련 사안에 대해선 외교부가 대응하며 각 부처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런 개별 대응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6∼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장관 등을 만나 한국의 관세 면제 조치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미국이 문제 삼는 국내 비관세 장벽 같은 경우, 미국산 소고기 수입 규제 부분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플랫폼 규제 부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는 등 사실상 사안에 따라 전 부처가 연관돼 조율돼야 할 문제”라면서 “안 장관이 다른 모든 부처 장관을 지휘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간 대통령실이 지휘를 했지만 이제는 부처를 조율하고 유기적으로 전략을 세울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부재가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관가 내부에선 영(令)이 서지 않는 등 정책 동력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조기 대선 가능성에 따라 정권 교체가 될 경우, 민감한 외교 정책들이 모두 뒤바뀔 수 있는 만큼 대미 외교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반응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미동맹 같은 경우는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남북 문제 등은 기조가 뒤바뀔 수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 외교 정책을 미국이 신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