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후… 성공한 이민자 2세가 느낀 ‘혼란과 애증의 미국’[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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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민승남 옮김│열린책들

이 자전적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다.

우선 논픽션에 가까운 자전적 스토리 때문이다. 작가인 아야드 악타르와 가족이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아야드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미국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위스콘신에서 자랐다. 그런데 악타르라는 특이한 성(姓)에서 보이듯 그는 무슬림계 이민자 2세라는 배경을 갖고 있다. 아버지 시칸데르는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기회의 땅’ 미국으로 건너갔고, 심장 전문의로서 성공했다. 부친은 저명한 의사, 아들은 유명한 작가이니 이 정도면 근사하게 ‘꿈을 이룬’ 이민 가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미국의 상황이 어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어느 때보다 분열된 정치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 ‘기회의 땅’은커녕 이민자를 몰아내고, 성별·인종별 차별을 부추기며, 혐오와 분노를 유발한다. 이민자로선 죽을 맛일 테다.

아야드의 문체와 내러티브에도 이 같은 불안과 혼란, 애증의 심리가 고스란히 읽힌다.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가족의 삶을 통해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무슬림 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그리고 차별이 노골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국가적 소속감을 블랙 코미디에 담는다.

소설의 첫 장을 장식한 ‘트럼프 취임 1주년 기념일에’의 사연도 흥미롭다. 아야드에 따르면, 부친인 시칸데르는 한때 트럼프의 주치의였다. 트럼프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파산 지경이던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당시 트럼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희귀 심장질환으로 의심되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심장 전문의인 시칸데르가 트럼프를 만나 한동안 교류하며 치료했다. 이 과정에서 시칸데르는 트럼프의 응대에 반했고, 2016년 그가 대선에 출마하자 묻지도 않고 그에게 투표했다. 이를 두고 아야드와 부친은 심한 갈등을 빚었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부자의 이야기이지만, 왠지 극단으로 쪼개진 우리 중·장년 세대의 자화상을 엿보는 듯하다.

책은 미국 주요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회고록과 소설, 역사와 문화 분석이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 역작’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받았다. 동시에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2020년 출간됐을 때보다 더욱 현실을 잘 들춰낸 예언서와 같은 작품이 됐다. 520쪽, 1만98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