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 ‘마녀’가 보이는 듯… 지휘봉이 칼처럼 내리꽂혔다

  • 문화일보
  • 입력 2025-03-17 09:28
  • 업데이트 2025-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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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지휘자 괴첼 울산시향 취임 연주회 ‘꿈과 환상’

세계적 마에스트로 사샤 괴첼(사진)은 펜싱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칼싸움이 격렬해지고 음악이 격해지자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처럼 튀어 올라서 지휘봉을 내리꽂았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5악장 ‘마녀들의 밤꿈’. 마녀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자 지휘자 괴첼은 퇴마사처럼 의식을 거행했다. 이 5악장 중 ‘진노의 날’이 흘러나올 때는 이 음악을 사용한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적과의 동침’도 머리를 스쳤다.

지난 14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사샤 괴첼 취임 연주회 ‘꿈과 환상’의 마지막 장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괴첼은 지난달 말 울산시립교향악단의 10대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위촉됐다. 이날 최종 리허설에서 만난 괴첼은 “울산시향과 내가 원하는 소리를 드디어 찾았다. 새로운 우주의 행성을 찾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공연의 매끄러운 호흡을 기대하게 하는 말이었다.

1부는 하이든 교향곡 39번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이었다. “빈 고전파 음악으로 현의 기본을 다지고 싶었다”고 한 괴첼. 하이든 곡은 포디엄(지휘 단상) 없이 오케스트라와 같은 높이에서 지휘했다. 이 질풍노도의 곡은 다른 교향곡들과 달리 어두운 부분이 많은데, 특히 모차르트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 괴첼은 이를 정확하게 해석해 지휘했다. 모차르트 25번 교향곡과 돈 조반니 등에서 감지할 수 있는 ‘음침함’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줬다.

협연한 피아니스트 김규연은 공연 전에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 가장 떨린다”고 이야기했지만, 청명한 터치로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특히, 2악장을 넘치지 않는 감성으로 전달한 게 일품이었다. ‘중용의 미’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그는 또, “오늘 공연 제목이 ‘꿈과 환상’이니까 1부는 꿈으로 끝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꿈)를 연주했다.

2부에서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체험이 펼쳐졌다. ‘환상교향곡’은 낭만주의 드라마의 선구적 곡으로 평가된다. 1, 2악장에서 괴첼은 다분히 현실적이었는데, 3악장 전원 풍경부터는 환상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이 시작되자 매우 드라마틱한 동작을 선보였다.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지휘의 패턴을 바꾼 것이다. 또, 금관 튜바와 트롬본이 위용을 발휘했다. 5악장 마녀가 살아나오는 장면은 대단히 입체적이고 눈앞에 마녀들이 보이는 듯 착각할 정도로 표현이 야무졌다.

기립박수와 함께 연주를 마무리한 괴첼의 다음 연주회는 내달 4일 울산시향의 242회 정기연주회 ‘낭만주의 영웅들’이다.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김영욱 협연) 슈만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괴첼은 이스탄불 보루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에 헌신했다. 또, 현재 ‘비엔나 아트 워크’의 대표로 온라인 예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유럽과 북미, 일본의 유명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울산은 물론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도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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