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독트린 돌파구 될 美 함정 MRO[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5-03-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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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식 前 병무청장, 前 해군 작전사령관

미국 해군 월리시라호가 지난주 한화오션에서 종합정비(MRO;유지·보수·정비)를 마치고 출항했다. 지난해 9월 거제조선소에 도착했을 때의 노후 상태와 비교하면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확연히 달라졌다. 외관 변화뿐 아니라 미군 측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 찾아내 정비 방안을 제시하는 한국 특유의 노련하고 섬세한 기술력에 미 해군은 큰 만족감과 신뢰를 표시했다.

K-조선 역사에 ‘미 해군 MRO사업 1호’로 기록될 이번 미션의 성공적 완수에는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선 중대한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뿌듯한 격세지감이 작지 않다. 70여 년 전 6·25전쟁 당시 미군 수송선에 의지해 피란길에 올랐던 최빈국이 오늘날 미국 군함까지도 정비하는 세계적 조선(造船) 강국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국민이 느낄 그 자부심에는 가치를 매기기조차 어렵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맞은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 ‘한미 조선동맹’의 새로운 장을 여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군력을 기반으로 절대 강자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군함의 현대화와 건조 등 대대적인 해군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미국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현재 296척의 함정을 2054년까지 381척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연평균 44조 원의 예산을 사용할 예정이다. MRO 사업에만 연간 12조 원 정도를 지출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미국의 조선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침체돼 더는 미 해군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처지다.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자국의 군함 건조 역량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월리시라호 MRO의 성공 사례는 미국에 향후 인·태 지역에서 강한 해군력을 유지하면서 함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이자 롤 모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미 해군의 MRO를 넘어 신규 건조 참여 기회를 여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한미 조선 협력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 최근 동맹국과 적성국을 가리지 않는 관세 부과나 나토(NATO)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서도 드러나듯이 미국이 취하는 일련의 외교·경제 정책은 철두철미한 호혜주의(reciprocity)를 핵심으로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혜택을 베푸는 산타클로스 역할을 더는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독트린’은 당연히 한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미 함정에 대한 MRO 확대와 신규 건조까지 우리나라 기업이 참여하게 된다면 한미 간에 군사·경제·안보적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상호 신뢰를 증진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에서 핵심 파트너로서의 입지는 물론 한미동맹 관계 전체를 한 단계 더 높이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다.

MRO 사업이 현시점에서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할지라도 ‘한미동맹 강화’라는 국가적 안목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기업에 좋은 것이 국가에 좋은 것이듯, 국가에 좋은 것이 곧 기업에도 좋은 것이다.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

photo 이기식 前 병무청장, 前 해군 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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