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사이… 시대 따라 달라진 ‘광고의 방정식’[북리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폭스바겐의 ‘Think Small’(작게 생각하라) 캠페인(왼쪽 사진)과 1990년대 질레트의 안전면도기 광고. 이처럼 광고는 시대의 경제·사회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상품을 소개했다. 푸른역사 제공

■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
김동규 지음│푸른역사

1959년 폭스바겐의 파격 광고
큰차 선호 와중 “Think Small”
감성접근 통한 ‘소프트셀 전략’

20세기초 질레트 ‘하드셀 광고’
아기까지 등장시켜 “안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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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광고를 마주한다. 버스 정류장에 걸린 커다란 포스터,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배너 광고, 유튜브 영상을 보기 전 5초간 참아야 하는 광고까지. 광고는 공기처럼 우리 곁에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소비자로서 살아간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삶은 소비와 더욱 밀접해졌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시장은 급격히 커졌고, 이제 소비는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소비를 촉진하고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광고다.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는 광고가 단순한 판매 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욕망의 역사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광고업계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학에서 세계광고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광고의 역사를 단순한 마케팅 기법의 발전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대의 경제·사회적 흐름과 어떻게 맞물려 변화해왔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광고 전략을 하드 셀(hard sell)과 소프트 셀(soft sell)이라는 두 개념으로 나누어 분석하며, 시대에 따라 소비자의 욕망을 설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광고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특정 시대를 지배했던 가치관과 사회적 분위기를 읽고 싶다면, 그 시대의 광고를 보면 된다. 1959년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에서 광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당시 미국에서는 ‘차는 클수록 좋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폭스바겐은 “Think Small”(작게 생각하라)이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내걸었다. ‘작아도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감성적 접근, 즉 소프트 셀 광고 전략이었다.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에서 남성적 이미지를 강조했던 말보로(Marlboro)의 경우, 하드 셀에서 소프트 셀로의 극적인 전환을 보여준다. 원래 여성용 담배로 시작한 말보로는 1950년대 ‘말보로 맨’을 등장시키며 카우보이의 강인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 광고는 단순한 제품 홍보가 아니라 ‘자유롭고 강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을 만들었다.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그것이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가치를 구매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광고 전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시기에는 이성이, 어떤 시기에는 감성이 더해졌다. 경제가 불안정한 시기에는 하드 셀 광고가 강세를 보인다.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소비자의 논리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반면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풍요로워지면, 소프트 셀 광고가 빛을 발한다. ‘이 제품을 쓰면 더 멋진 사람이 된다’는 식의 감성적 메시지가 중심이 된다.

질레트 면도기 광고는 이 두 가지 흐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세기 초 질레트는 “더 가까이 면도하고, 더 오래 지속되는 면도날”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제품의 성능을 강조하는 하드 셀 광고를 펼쳤다. 면도날 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기술적 우위를 내세웠고, 심지어 광고에 아기까지 등장시켜 ‘질레트는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21세기에 들어 질레트는 남성성을 재정의하는 감성적 접근을 시도했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책임감 있고 배려하는 남성을 강조하는 소프트 셀 광고로 전략을 변경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한국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OB)와 크라운 맥주가 양분하고 있었지만, 1993년 하이트(Hite)가 등장하면서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하이트는 ‘깨끗한 맛’이라는 강점을 내세우며 비교 광고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국내 최초의 물 좋은 맥주’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했다. 이는 하드 셀 광고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시장이 성숙하면서 하이트의 광고 전략도 변화했다. 최근 광고에서는 ‘젊음’ ‘축제’ ‘함께하는 즐거움’ 같은 감성적 요소를 강조하는 소프트 셀 광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때로는 “또 광고에 속았다”며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굳이 억울해하지 않아도 좋다. 그것은 우리가 ‘상술’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유혹의 기술에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일 테니까. 하드 셀과 소프트 셀의 향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에도 시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그렇지 않아도 오늘도 우리는 결제 버튼을 누를 테니까. 872쪽, 4만5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