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듯 날카로운 ‘魔球’… “쳐볼테면 쳐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임스 네일(왼쪽), 애덤 올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영표(왼쪽), 정현우.

■ 2025 프로야구 빛낼 투수들의 ‘비장의 무기’

네일 ‘스위퍼’
검지·중지 솔기에 걸리게 잡아
구속 느리지만 수평 움직임 커

올러 ‘슬러브’
중지만 실밥에 올리고 손목 스냅
슬라이더처럼 빠르게 확 휘어져

고영표 ‘체인지업’
엄지와 검지 원을 그리듯 잡아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져

정현우 ‘포크볼’
공을 손가락 사이에 깊이 넣어
직구 궤적으로 가다 푹 꺼져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2025 신한은행 쏠(SOL) 뱅크 KBO리그가 22일 전국 5개 구장에서 열리는 개막전으로 일제히 막을 올린다. 약 6개월의 장기 레이스를 벌이는 프로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특히 선발투수력은 강팀과 약팀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최근 3년간 선발투수가 총 50승 이상을 챙긴 구단들은 빠짐없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올해도 선발투수들의 손에 팀 순위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발투수의 ‘결정구’가 확실하면, 타자와의 승수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이미 검증을 마친 KIA 제임스 네일의 ‘스위퍼’와 KT 고영표의 ‘체인지업’, 그리고 KIA 새 외인 애덤 올러의 ‘슬러브’와 키움 신인 정현우의 ‘포크볼’ 등은 올 한 해 KBO리그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내다보인다.

◇네일의 스위퍼 = 지난해 KBO리그 마운드엔 스위퍼 광풍이 몰아쳤다. 스위퍼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구종. 스위퍼는 변형 슬라이더의 일종인데, 일반적인 슬라이더보다는 구속이 느리지만 수평 움직임과 수직 움직임이 더 크다. 스위퍼를 던질 때 잡는 그립은 더 옆으로 채서 던져야 하기에 검지와 중지를 일반 슬라이더보다 솔기에 더 걸리게끔 잡는다.

우완인 네일은 지난해 스위퍼로 KBO리그를 평정했다. 네일의 스위퍼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홈플레이트 너비인 43㎝를 다 쓸고 나간다”라고 표현했다. 네일의 스위퍼가 더욱 특별해진 데는 또 다른 무기인 투심패스트볼의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네일은 직구(포심패스트볼)보다 투심패스트볼을 더 많이 던진다. 네일의 투심패스트볼은 우타자의 경우, 몸쪽을 파고든다. 결과적으로 네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2개의 구종을 활용하는 ‘좌우놀이’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네일을 상대한 타자들은 “알고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올러의 슬러브 =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 캠프지에서 만난 KIA 포수 김태군은 “올러의 슬러브를 주목해야 한다. 그간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마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슬러브는 위에서 아래로 휘는 커브와 옆으로 휘는 슬라이더를 조합한 것. 투수에 따라 던지는 법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실밥에 걸쳐 잡는 대신 중지만을 실밥에 올려놓고 강한 손목 스냅을 사용한다. 국내 야구팬들에게 슬러브가 익숙한 것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선구자였던 박찬호가 현역 시절 주로 사용했기 때문.

올러의 슬러브도 박찬호의 슬러브와 같이 슬라이더처럼 빠르면서 동시에 커브처럼 날카롭게 떨어진다. 기술적으로 보면 시속 150㎞짜리 직구와 섞어 던지기 때문에 슬러브는 더 위력적이다. 김태군의 표현처럼, 올러의 슬러브는 벌써 ‘공략하기 힘든 공’으로 공인받았다. 올러는 올해 시범경기에서 2차례 등판, 평균자책점 1.29를 남겼다. 김선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휘는 각과 떨어지는 궤적 등이 국내 타자들이 공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영표의 체인지업 = 체인지업은 타격의 타이밍을 흩트리는 데 가장 좋은 구종으로 평가된다. 체인지업은 직구와 똑같은 폼으로 던지며, 구속이 직구보다 15㎞ 정도 낮기에 타자들을 속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일반적으로 엄지와 검지가 원을 그리듯 공을 잡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공을 감싸는 서클 체인지업이 인기다.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춤을 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고영표의 직구 평균구속은 시속 135㎞ 전후. 체인지업은 110㎞ 후반대에 형성된다.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아래로 뚝 떨어진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체인지업이 썩 위력적이지 못했다. 지난해 도입된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여파였다. 고영표는 사이드암 투수. 투구 궤적이 수평 혹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데, 막판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대부분 볼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올핸 ABS가 신장 180㎝ 타자 기준 약 1㎝ 낮아지면서 지난해 볼로 판정을 받은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걸칠 가능성이 크다. 고영표의 2023년 땅볼 유도 비율은 54.4%로 국내 선발투수 중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48.3%로 떨어지면서 고전했다. 2024시즌 성적은 6승 8패 평균자책점 4.95. 고영표의 체인지업이 살아나면, 자신도 살고 팀도 산다.

◇정현우의 포크볼 = ABS 하향 조정에 따라 포크볼의 효용가치도 높아졌다. 공을 손가락 사이에 좀 더 깊이 끼워서 던지는 포크볼은 지난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키움 유니폼을 입은 정현우의 주무기다. 직구와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지는 구종이다. 포크볼은 구속은 떨어지지만,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는 각도가 커 투수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졸 신인인 정현우는 포크볼을 앞세워 올해 키움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꿰찼다. 특히 정현우의 포크볼은 타자의 어깨에서 커브와 비슷한 궤적으로 떨어지기에 더 공략하기 어렵다는 반응. 실제 정현우를 상대한 타자들은 ‘갑자기 푹 꺼진다’는 표현을 쓴다. 공을 던진 뒤 폴로스루가 자연스럽고, 회전 궤적도 크기 때문에 떨어지는 폭이 크다. 여기에 10대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은 매력포인트. 이승호 키움 투수코치는 “볼카운트가 몰린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포크볼을 던질 줄 알기에 ‘롱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