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 출토 옻칠 두형 그릇. 국가유산청 제공
■ 유산청, 영남서 대거 유물 출토
김해 봉황동 명품 두형그릇 발굴
당대 생활목기와 함께 나와 의의
함안에선 지름9.7m 집수지 발견
고대사 비밀 밝힐 목간도 기대
유산청, 문닫은 모곡터널 재활용
예담고서 유물보관·시민교육도
함안·창원=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고대 가야 왕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물들이 영남지방 곳곳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금관가야 왕성’으로 추정하는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는 약 20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칠기가,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 중인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는 가야 최초의 ‘집수지(集水地)’가 발견됐다. 24일엔 영남 지역 출토 유물 연구·활용 공간인 ‘예담고(庫)’도 문을 열었다.
봉황동 유적 출토 목제 부속. 국가유산청 제공
◇‘금관가야 왕성’ 김해 봉황동, 2000년 전부터 문화의 중심 = 금관가야 왕성으로 추정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명품’ 옻칠 그릇이 처음 출토됐다. 1세기 무렵,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돋보이는 의례 용품이다. 국가유산청은 24일 경남 창원시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연구소)에서 개최한 김해 봉황동 유적 제10차 발굴조사 성과발표회를 통해 목 부분이 길고 가느다란 형태로 콩 두(豆)를 닮은 옻칠 두형(豆形) 그릇 15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봉황동 유적에서 이와 같은 형태의 칠기가 출토된 것도 처음이지만 내용 면에서 특이한 점이 많다. 기존에 발견된 목이 긴 옻칠 두형 그릇, 옻칠 굽다리 접시 등은 창원 다호리 유적과 경북 성주 예산리, 포항 성곡리 목관묘(木棺墓·널무덤) 등 무덤의 부장품으로 발견됐는데 봉황동에서는 여러 생활 유물과 함께 나왔다. 또한 발굴을 담당한 연구소의 이인숙 연구관은 “목 부분의 지름이 훨씬 가늘고 정교해 기존에 출토된 유물과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시기에 한정돼 최상위 지도자급의 무덤에서만 발견되던 유물이 생활 목기와 함께 나왔다는 점을 들어 연구소는 “봉황동 유적이 이미 1세기부터 독자적인 대규모 생활유적을 형성했으며, 변한의 수장급 거처에서 성장해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음을 추측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발견된 배수로.국가유산청 제공
◇‘아라가야 왕성’ 함안 가야리, 가야 최초 문자 흔적 나올까 = 연구소는 이날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되는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가야 문화권 최초로 발견된 ‘집수지’ 현장도 공개했다. 가야권 유적에서 물을 저장해 사용한 흔적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오춘영 연구소장은 이날 발굴 현장을 공개하며 “약 2주 전 확인된 유적”이라며 “앞으로 연구할 부분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집수지는 원형에 가까우며 돌을 이중으로 쌓아 만든 형태다. 현재까지 지름 9.7m, 깊이 1.9m까지 조사됐다. 이번 발견이 이목을 끄는 건 집수시설 주변에는 통상 동식물 유체를 비롯해 각종 목기 등 다양한 유물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출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소 측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인 목간(木簡)이다. 목간은 문헌 기록이 많지 않았던 고대사를 밝힐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연구소 측은 “지금까지 가야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 소장은 “집수지는 아라가야의 타임캡슐이 될 수 있다”며 “이제 기반 조사를 겨우 끝냈을 뿐 앞으로 조사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경남 함안 영남권역 예담고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 국가 귀속 전 머무는 ‘유물 정거장’·비귀속 유물의 ‘최종 종착역’ 예담고 개관 = 활발한 발굴 조사가 이뤄지기 위해선 출토된 유물들의 적절한 보존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이뤄진 김해 봉황동 발굴 조사만 해도 300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졌지만 이후 유물 선별회의 등을 거쳐 국공립 박물관에서 보관·관리하는 ‘국가 귀속 유물’로 이관될 유물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귀속 유물로 분류되면 발굴조사 기관에 관리 책임이 남는다.
따라서 영남권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인 예담고가 함안에 문을 열며 발굴 조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과 한국문화유산협회는 이날 폐터널인 모곡터널을 재활용해 조성한 예담고를 공개했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와 함안박물관, 경남문화재연구원은 예담고에 수장 공간뿐 아니라 전시실과 교육실을 마련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이날 방문한 예담고에서는 발굴 도구인 ‘트라울(흙손)’을 쥔 어린이들이 모사품이 아닌 실제 출토 유물을 활용해 발굴을 체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관식에 참석한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고대 철기 문화와 교역으로 번성했던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경남 함안이 새로운 역사·문화 공간의 거점으로 자리 잡는 데 예담고가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