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국채이자 등 ‘의무지출’ 수술… 민생·산업 살리기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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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예산안 지침 - 내년 예산 사상 첫 700조 돌파

의무지출 비중 54%로 ‘눈덩이’
재량지출과 구조조정 병행키로

관세發 통상리스크 대응 방점
일자리 등 4대 분야 집중 투입

25일 발표된 ‘2026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에 따르면 내년 예산은 재정 기조·재원배분·지출혁신 측면에서 지난해와 유사하지만, 미국발(發) 관세부과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해 산업·통상 지원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편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령화 등으로 의무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 대비해 지난 4년간 강조됐던 재량지출 구조조정 외에도 재정 건전성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의무지출 구조조정까지 본격 검토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다만 탄핵 국면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워낙 커 정부의 내년도 예산 편성 작업은 향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날 지침 확정으로 내년도 예산 편성 작업이 본격 시작됐지만, 내년도 재정운용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성장·교역 위축, 첨단·주력산업 경쟁 심화가 예상된다. 국내적으로도 누적된 고물가·고금리가 소비·건설 침체 등 내수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는 데다 수출 증가세가 꺾이며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4대 중점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민생안정·경기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세 소상공인·전통시장 등 취약부문 소비를 늘리고 청년·고령층 등 취약계층 일자리도 창출한다. 산업 경쟁력 강화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AI) 모델 개발, 첨단·주력산업 지원, 수출품목 다변화 등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일가정 양립·돌봄·주거 지원으로 인구위기에 대응하고 원전·수소 등 무탄소에너지 확대로 기후위기를 극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사회·경제 체질 개선에도 나선다. 마약, 디지털 성범죄 등 민생침해범죄 예방·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드론 등 방위산업 수출을 지원하는 한편, 대외환경 변화에 맞춰 양자·다자외교 역량도 확충한다.

특히 10% 이상의 재량지출 구조조정뿐 아니라 의무지출도 수술대에 올린다는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잠재성장률이 사실상 1%대로 떨어지며 법인세를 중심으로 한 세수 기반이 통째로 흔들리고, 고령화로 인해 의무지출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조치다.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의무지출 비중은 올해 54.2%에서 2028년 57.3%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의무지출이 급증하는 반면, 세입 기반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며 “법 개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의무지출 소요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 용어설명

의무지출·재량지출 = 의무지출은 법률에 따라 지출의무가 발생하고 법령에 따라 지출규모가 결정되는 법정지출과 이자지출의 합계를 의미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공적연금·건강보험·국채이자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다. 반면 재량지출은 의무지출에 해당하지 않는 재정지출로 규정된다. 정부가 재량권을 가지고 편성하는 예산이어서 필요에 따라 삭감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