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산불에 폐허 된 ‘행복고도 600’ 주민… “다 끝났어, 이젠 절망고도”

■ 경북 산불 이재민 ‘눈물’

‘행복고도 600’으로 불린 영양 포산 마을
전기·수도·통신 아직 복구 안돼 암담

마을 90% 초토화된 영덕 매정리도
마을 버스까지 끊겨 고립된 생활


영양=노수빈·영덕=조언 기자


“행복고도 600은 무슨… 이제는 다 끝났어. 절망고도야.”

사람이 살기 가장 쾌적한 고도(해발고도 600m)라는 뜻에서 ‘행복고도 600’으로 불리던 경북 영양군 석보면 포산마을. 하지만 지난 25일 산불이 덮친 이후 쑥대밭이 된 이 마을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31일 오전 찾은 마을에는 형체도 없이 무너진 집과 철골만 남은 비닐하우스가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기·수도·통신은 7일째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주민 정모(68) 씨는 “우리 마을로 올라오는 길이 나무가 많아 산책하기 참 좋았는데, 폐허가 된 마을을 보니 난민이 된 기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집을 지킨 주민들 사정 또한 절망적이다. 농지와 비닐하우스 등까지 타버리면서 생계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이 마을 9가구 중 유일하게 집이 전소되지 않았다는 임현주(64) 씨는 “다른 사람들 앞에선 입도 뻥긋 못하지만 다 타버린 버섯을 볼수록 암담하고 기운이 빠진다”며 폭 8m, 길이 33m의 비닐하우스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3개월 동안 숙성했다는 송고버섯은 형체도 없이 숯처럼 타버렸다. 임 씨는 “불똥이 튀지 않은 10평짜리 밭에 고추라도 심을까 싶어 주변 계곡과 이웃 마을을 돌며 물을 길어온다”고 눈물을 보였다.

주민 6명이 사망하고 마을의 90%가 타버린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또한 과거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기 어려워 보였다. 마을 골목길은 모두 검게 그을려져 있었고, 집과 창고 등은 폭삭 주저앉은 상태였다. 마을의 상징인 115년 역사의 매정교회도 전소해 잔해만 남았다. 전기와 통신이 복구되지 않은 데다 하루에 2∼3번밖에 다니지 않던 마을버스마저 끊기면서 피난 생활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간 일부 주민들은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민 고영호(91) 씨는 “약 사러 군내로 나가야 하는데 버스가 들어오질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전기가 끊겨 냉골방에서 자고 있다”고 말했다.

논과 밭, 육묘장 등도 온전하지 않았다. 불길이 휩쓸고 간 밭에는 거무튀튀한 재만 남았다. 주민 박홍(74) 씨는 “농민들은 노후대비랄 게 없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나이가 70을 넘겼는데 이제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것 같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