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달러 초가집이 교회·진료소로… 기독교, 금강 뱃길 따라 번졌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와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의 기념 동상 앞에서 여양현(왼쪽) 공주 영명중·고등학교 교장과 서만철(오른쪽) 한국선교유적연구회 회장이 설명하고 있다.

■ 선교 140주년… 군산·강경·공주 ‘근대 기독교 문화유산’ 탐방

1895년 군산, 전킨 선교사 첫발
영명학교 등 세워 근대교육 기여

강경엔 침례교 첫 예배당 탄생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격렬 거부

공주, 유관순 스승 샤프 선교사
39년간 여학교 20여 개 설립해

군산·강경·공주=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지난달 24일, 목련이 피기 시작한 전북 군산의 수덕산에 올랐다. 국내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총연합이 주최한 군산, 강경, 공주지역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탐방의 출발지다. 5분쯤 오르니, 낯선 두 남자의 얼굴이 담긴 기념비가 나온다. 서양인이 분명한데, 그 아래엔 전위렴(全緯廉)과 유대모(柳大模)라는 한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1895년 3월 조선의 호남 땅을 밟았던 미국인 선교사들, 바로 목사 윌리엄 전킨(1865~1908)과 의사 알렉산드로 D 드루(1859~1926)다. 이들은 130여 년 전 이곳에서 두 채의 초가를 50달러에 사들여 교회와 진료소로 사용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윌리엄 전킨 선교사의 묘지에서 소강석(오른쪽)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와 서동표 군산중동교회 담임목사가 설명하고 있다.

◇큰 세상을 꿈꾼 벽안의 청년들 = 수덕산은 군산지역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다. 군산은 개항 전만 해도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으나 두 젊은 선교사들의 눈에는 금강과 바다가 접하는 군산이 교통의 요지로, 선교 거점으로 충분해 보였다. 한국식 이름을 쓰며 지역에 녹아들었던 두 사람은 주민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제의 조계지 정책으로 초가는 4년 만에 사라지게 됐으나, 전킨은 ‘궁멀’이라 불리던 곳에 궁멀교회(현 구암교회)를 세우게 된다.

구암교회는 군산 주민들의 안식처이자,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의 결집지이기도 했다. 탐방을 인솔한 허은철 총신대 역사학과 교수는 “1919년 3·1운동은 한강 이남으로 확산하는데, 그 선두에 군산이 있었다”며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가 독립운동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고 설명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주기독교 박물관이 자리한 공주제일교회. 공주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신홍식 목사(왼쪽 동상)와 유관순 열사 등을 배출한 교회다.

전킨은 멜볼딘여학교와 영명학교(현 군산제일중·고교)를 설립해 근대 교육에도 크게 기여했다. ‘영명’은 ‘영원한 빛’(예수를 지칭한다)이라는 의미로, 전신인 영명학교의 기독교 정신을 이어받은 군산제일중·고교는 올해로 벌써 120주년이 됐다.

세 아들을 풍토병으로 잃고도 선교 활동을 접지 않았던 전킨 선교사는 자신 역시 구암교회가 있는 궁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다만, 아직 그 유해는 찾지 못했다. 이날 군산 선교 기념탑과 수덕산, 군산선교역사관 등 최근 조성된 ‘전킨 순례길’을 함께 걸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전킨 선교사님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의 복음을 전하고 근대화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교사님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주제일교회 오른쪽 외벽에는 사애리시와 유관순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뱃길 따라 만나는 빛나는 이름들 = 금강 뱃길을 따라 올라가면 논산 강경이 나온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물자가 풍부해 큰 장이 열리고, 한 번에 100여 척의 선박이 정박하기도 했던 곳. 옛 명성에 비하면 지금은 그 겉모습이 소박하지만,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운동이 격렬했던 곳으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옥녀봉에 오르면 남자와 여자가 따로 예배를 봤던 ‘ㄱ’ 자형 유교식 예배당 터를 만난다. 한국 침례교 교회의 첫 예배당이 있었던 곳으로, 이곳에서 1924년 신도와 일반인 총 62명이 신사참배에 저항해 고초를 겪었다. 또 1933년 설립된 병촌성결교회는 6·25전쟁 당시 교인 66명이 북한군에 의해 순교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4년 이 교회를 충청권 기독교인 박해 지역으로 공식 발표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주제일교회 옛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마지막 순례지는 금강으로 둘러싸인 충남 공주. 이곳의 근대 기독교 문화유산도 독립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선교지 분할 협의에 따라 이 지역엔 감리교가 들어섰는데, 이때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이 프랭크 윌리엄스(한국명 우리암) 선교사다. 지난달 25일 1906년 윌리엄스 선교사가 세운 공주 영명학교를 찾았다. 유관순이 이화학당으로 편입하기 전까지 다녔던 학교다. 또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1899∼1968), 그와 함께 1919년 4월 1일 공주 만세운동을 주도한 노명우(1897∼1936) 등도 이 학교 재학생이었다. 여양현 공주영명중·고교 교장은 “재학생들은 선배들의 독립운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면서 “본교 출신자 17명이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라고 말했다.

유관순에겐 앨리스 해먼드 샤프(한국명 사애리시)라는 스승이 있었다. 사애리시는 남편과 함께 공주에서 선교를 시작했다가 반년 만에 남편을 잃고 홀로 남아 39년을 이 땅에서 헌신했다. 유관순이라는 영민한 제자를 눈여겨보고 서울로 유학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충남 일대에 20여 개 여학교를 설립하는 등 근대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학교 뒷동산(영명동산)에 자리한 사애리시의 묘 앞에 서니 공주시가 한눈에 보였다. 봄볕을 받은 묘비의 글귀가 선명하다. “우리가 당한 고난이 크고 잃은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든 선한 길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